마음의 쉼터/차 한 잔과 시(1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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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심 - 손택수
차심 손택수 차심이라는 말이 있지 찻잔을 닦지 않아 물이끼가 끼었나 했더니 차심으로 찻잔을 길들이른 거라 했지 가마 속에서 흙과 유약이 다툴 때 그릇에 잔금이 생겨요 뜨거운 찻물이 금 속을 파고들어가 그릇 색이 점점 바뀌는 겁니다 차심 박힌 그릇의 금은 병균도 막아주고 그릇..
2017.07.31 -
치치 - 김남권
치치/김남권 세상에서 첫 햇살이 돋아 오르는 언덕에 서서 그대를 기다린다 수억 년을 넘어 온 세월의 흔적을 딛고 선 그 자리에서 바람이 몰고 온 햇살의 입자들로 몸을 씻으면 그대를 향한 기억들이 하얀 솜털로 돋아난다 나뭇가지처럼 자라 난 솜털들이 이파리마다 해어화를 피우고 ..
2017.05.25 -
너무 늦게 그에게 놀러 간다 - 나희덕
너무 늦게 그에게 놀러 간다 나희덕 우리집에 놀러 와. 목력 그늘이 좋아. 꽃 지기 전에 놀러 와. 봄날 나지막한 목소리로 전화하던 그에게 나는 끝내 놀러 가지 못했다. 해 저문 겨울날 너무 늦게 그에게 놀러 간다. 나 왔어. 문을 열고 들어서면 그는 못 들은 척 나오지 않고 이봐. 어서 나..
2017.03.31 -
오래 된 書籍 - 기형도
오래 된 書籍 기형도 내가 살아온 것은 거의 기적적이었다 오랫동안 나는 곰팡이 피어 나는 어둡고 축축한 세계에서 아무도 들여다보지 않는 질서 속에서, 텅 빈 희망 속에서 어찌 스스로의 일생을 예언할 수 있겠는가 다른 사람들은 분주히 몇몇 안 되는 내용을 가지고 서로의 기능을 넘..
2017.03.20 -
.봄바다 / 김사인
봄바다 김사인 구장집 마누라 방뎅이 커서 다라이만 했지 다라이만 했지 구장집 마누라는 젖통도 커서 헌 런닝구 앞이 묏등만 했지 묏등만 했지 그 낮잠 곁에 나도 따라 채송화처럼 눕고 싶었지 아득한 코골이 소리 속으로 사라지고 싶었지 미끈덩 인물도 좋은 구장닙 셋째 아들로 환생..
2017.02.10 -
꽃바구니 - 나희덕
나희덕 꽃바구니 자, 받으세요, 꽃바구니를. 이월의 프리지아와 삼월의 수선화와 사월의 라일락과 오월의 장미와 유월의 백합과 칠월의 칼라와 팔월의 해바라기가 한 오아시스에 모여 있는 꽃바구니를. 이 꽃들의 화음을. 너무도 작은 오아시스에 너무도 많은 꽃들이 허리를 꽂은 한 바..
2017.01.2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