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의 쉼터/차 한 잔과 시(1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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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사의 저녁
산사의 저녁 - 서동춘(길따라) 산사에 노을이 젖어들며 이 빠진 종소리가 들려온다. 이 빠진 종소리에 바람이 내려앉는다. 붉은 노을에 산새들 귀가를 서두르고 붉은 종소리에 산사를 품은 산이 한낮의 긴장을 푼다. 꽃망울로 지는 지친 태양을 연꽃으로 받드는 저 산맥들
2020.10.28 -
천장호에서 - 나희덕
천장호에서 얼어붙은 호수는 아무 것도 비추지 않는다 불빛도 산 그림자도 잃어버렸다 제 단단함의 서슬만이 빛나고 있을 뿐 아무 것도 아무 것도 품지 않는다 헛되이 던지 돌멩이들, 새떼 대신 메아리만 쩡쩡 날아오른다 네 이름을 부르는 일이 그러했다 나희덕의 시집 [그곳이 멀지 않다]에서 - 최진석의 도덕경에서 발췌
2020.09.14 -
찬 물새, 오랫동안 잊혀졌던 순간이 하늘에서 툭 떨어지는 것을 본 양 / 허수경
찬 물새, 오랫동안 잊혀졌던 순간이 하늘에서 툭 떨 어지는 것을 본 양 허수경 저녁에 물새 하나가 마당으로 떨어졌네 툭, 떨어진 물새 찬 물새 훅, 밀려오는 바람내 많은 바람의 맛을 알고 있는 새의 깃털 사막을 건너본 달 같은 바람의 맛 울 수 없었던 나날을 숨죽여 보냈던 파꽃의 맛 ..
2019.01.24 -
봄 비 / ...
여름에 내리는 비는 싫다. 여름비는 마치 철없는 나로 인해 생긴 부모님의 가슴에 생긴 상처들에서 흘러나오는 피 같다. 비가 내리는 것을 바라만 봐도 답답하고 불쾌하다. 하지만 봄에 내리는 비는 좋다. 봄비는 마치 내가 태어났을 때 부모님의 눈에서 흐른 맑은 눈물 같다. 그래서 나는..
2018.12.26 -
天葬 / 이정록
天葬 이정록 티베트 라롱 마을의 산꼭대기, 天葬의 시신을 독수 리들이 파먹는다. 독수리 발톱 사이로, 손가락 발가락 만이 남는다. 가솔들의 양식을 끌어들이고 밥을 짓던 손발에 대한 경배가 아니다. 오로지 밥이 되잖기에 남 은 것이다 손바닥 발바닥에 남아 있는 가는 손금들마저 곱..
2018.12.19 -
첫 꿈 / 빌리 콜린스
첫 꿈 빌리 콜린스 황량한 바람이 유령처럼 불어오는 밤 잠의 문전에 기대어 나는 생각한다. 세상에서 맨 처음으로 꿈을 꾸었을 사람을, 첫 꿈에서 깨어난 날 아침 그는 얼마나 고요해 보였을까, 자음이 생겨나기도 오래전 짐승의 표피를 몸에 두른 사람들이 모닥불 곁에 모여 서서 모음..
2018.10.3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