찬 물새, 오랫동안 잊혀졌던 순간이 하늘에서 툭 떨어지는 것을 본 양 / 허수경

2019. 1. 24. 10:58마음의 쉼터/차 한 잔과 시

   찬 물새, 오랫동안 잊혀졌던 순간이 하늘에서 툭 떨

어지는 것을 본 양


허수경


저녁에
물새 하나가 마당으로 떨어졌네

툭,
떨어진 물새 찬 물새
훅,
밀려오는 바람내

많은 바람의 맛을 알고 있는 새의 깃털

사막을 건너본 달 같은 바람의 맛
울 수 없었던 나날을 숨죽여 보냈던 파꽃의 맛
오랫동안 잊혀졌던 순간이 하늘에서 툭 떨어진 것을 본 양
나의 눈썹은 파르르 떨렸네

늦은 저녁이었어
꽃다발을 보내기에도
누군가 죽었다는 편지를 받기에도 너무 늦은 저녁
찬 물새가 툭 하늘에서 떨어지던 그 시간

나는 술 취한 거북처럼 꿈벅거리며
바람내 많이 나는 새를 집어들며 중얼거리네

당신,
나는 너무나 젊은 애인였어
나는 너무나 쓴 어린 열매였어

찬 물새에게 찬 추억에게 찬 발에게
그 앞에 서서 조용히
깊은 저녁의 눈으로 떨어지던 꽃을 집어드는 양 나는 중
얼거리네

당신,
우린 너무 젊은 연인이었어
우리는 너무 어린 죽음이었어

'마음의 쉼터 > 차 한 잔과 시' 카테고리의 다른 글

산사의 저녁  (0) 2020.10.28
천장호에서 - 나희덕  (0) 2020.09.14
봄 비 / ...  (0) 2018.12.26
天葬 / 이정록  (0) 2018.12.19
첫 꿈 / 빌리 콜린스  (0) 2018.10.3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