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8. 12. 19. 10:05ㆍ마음의 쉼터/차 한 잔과 시
天葬
이정록
티베트 라롱 마을의 산꼭대기, 天葬의 시신을 독수
리들이 파먹는다. 독수리 발톱 사이로, 손가락 발가락
만이 남는다. 가솔들의 양식을 끌어들이고 밥을 짓던
손발에 대한 경배가 아니다. 오로지 밥이 되잖기에 남
은 것이다
손바닥 발바닥에 남아 있는 가는 손금들마저 곱게
빻아서 천장사는 다시 독수리의 뱃속으로 디민다. 머
미카락만이 새 둥우리처럼 산정에 남는다. 월간 『지
오』 '天葬' 특집을 덮으며 기차에서 내린다
저 화물 열차며 통일호 새마을호 무궁화호, 지그재
그로 정차 중인 열차들은 어느 산정의 독수리들이 뜯다
남긴 손가락 발가락인가. 뼈마디에서 벌레처럼 사람
들이 쏟아져 나온다. 잘게 부수어 다시 독수리에게 건
네던 천장사는 동안거에 들었는가. 독수리들도 덩달아
어느 겨울 하늘에 부리를 벼리고 있는가. 참새 몇 마
리만이 화물 열차의 이마에 앉아 뼈마디를 가다듬는다
손가락 발가락들이 관절을 펴고 서울 쪽으로 부산과
진주와 목포 쪽으로 천천히 기어간다. 티베트 산정 돌
도마에 놓여 있던 손가락 발가락의 일생도 하행과 상
행의 반복이었다. 힘에 부치는 짐을 안았다 놓았다 한
것도, 달아오른 부젓가락 위에서 몸 지지며 살아온 것
도 한통속이었다
어느새 빻아놓았나. 시멘트를 나르는 星信洋灰 화
물 열차에서 뼛가룩가 쏟아진다. 저 뼛가루로 쌓아올
린 도시 한복판을 사천성 라롱 마을인 양 올라간다.
돌 도마로 쌓아올린 계단들, 내 가죽 구두 속 탈골한
발가락 어디쯤에서 우두둑 뼈마디를 맞추며 화물 열차
가 움직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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