옻나무 젓가락 이정록

2018. 10. 3. 08:43마음의 쉼터/차 한 잔과 시

옻나무 젓가락

이정록

십 년도 더 된 옻나무 젓가락
짝짝이다. 이것저것 집어먹으며 한쪽만 몰래 자랐나? 아니면
한쪽만 허기의 어금니에 물어뜯겼나?

어머니, 이 젓가락 본래부터 짝짝이였어요? 그럴
리가. 전 그럴 리가가 아니고 전주 이간데요. 저런 싸
가지를 봐. 같은 미루나무라도 짧은 쪽은 네 놈 혓바
닥처럼 물 질질 흐르는 데서 버르장머리 없이 크다가
물컹물컹 제 살 아무 데나 쓸어 박은 것이고, 안 닳은
쪽은 산 중턱 어디쯤에서 나마냥 조신하게 자란 게지.
출신이 모다 이 어미라도 동생들 봐라. 물컹거리는 녀
석 있나? 장남이라고 고깃국 먹여 키웠더니, 뭐? 그
럴 리가가 아니고 전주 이가라고? 배운 놈이 그걸 농
이라고 치냐? 젖은 혓바닥이라고.

저녁밥 먹고
어머니와 나란히 바깥마당으로 나오며
짝짝이 젓가락처럼 발끝 머리끝을 맞춰보는데
솥바닥을 뚫고나가 불길이 되고 싶었나?
서러워라, 어머니 쪽에서 불내가 솟구친다.
숟가락 내동댕이치고 서둘러 떠난 식구들
저 밤하늘 어디에서 늦은 저녁밥을 먹고 있나?
녹슨 양철 지붕 위로 옻칠 부스러져 내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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