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러니 - 박 영희
2010. 1. 11. 21:03ㆍ마음의 쉼터/차 한 잔과 시
저리도 많고 많은 노래 중에 왜 하필이면 가련다 떠나련다란
말인가 어쩌자고 아버지는 못살아도 좋고 외로워도 좋단 말인가
아버지는 노래를 좋아하셨다 농사꾼이 농사나 지을 일이지 나
락 내는 날 아버지는 떡하니 손잡이 달린 축음기를 사들고 오셨
다 동네에서 두 대뿐인 라디오도 이젠 양이 차지 않으셨던 모양
이다 그 덕에 알게 된 코맹맹이 이난영, 가슴 쥐어짜는 나애심,
비에 젖은 고운봉....... 정말이지 아버지는 엉뚱한 양반이었다
라디오도 양에 차지 않아 축음기더니 이번엔 민비가 그립다며
흑백 텔레비였다 농사일에 고단할 텐데도 아버지는 민비에 꽃
피는 팔도강산에 주말의 명화나 명화극장까지 보약 챙겨 드시
듯 꼭꼭 챙겨 보셨다 입도 맞추고 허리도 껴안고 아이 러브 유도
뱀 허물 벗듯 속삭여대는 낭만적인 그 이국영화를 말이다
그런 아버지가 어쩌자고 노래의 '노'자도 모르는 어머니를 만
났을까 목포의 눈물은 고사하고 텔레비만 켰다 하면 오분 이내
에 잠들어버리는 어머니를
눈물어린 보따리에 젖어든 황혼빛 탓이런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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