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전거
2009. 10. 31. 10:30ㆍ마음의 쉼터/김혜순 시인 시 읽기
자전거
자, 이제 내가 나의 밖에서 살아갈 시간이 왔어
내 귀에 주파수가 불가청 데시벨에 맞추어지고
몸 밖에서도 내가 살아갈 수 있다는 게 이상하지도 않아?
공기가 내 몸 속으로 들어왔다가 별 볼일 없다 나가는 소리
오줌통이 꽉찼다 철렁거리는 소리
제대로 땅에 박히지 못한 뼈들이 삐걱거리고
머리털이 이 몸에서 떠나고 싶다 쏴쏴거리는 소리
불 난 고아원의 아이들처럼 핏방울이
비명을 지르며 몰려다니는 소리
강의하느라 하루 종일 여닫힌 성대가
후회 때문에 아직도 파르르 떠는 소리
모두 몸 밖으로 나가겠다 안달이야
우주의 물레방앗간에선 물레방아가 돌고
우르릉우르릉 별들이 빻아지는 소리
구름이 깔깔거리며 몰려갔다 다시 몰려오는 소리
달나라 아이들이 밤새도록
강가의 빈집을 들락거리며 불장난하는 소리
편지를 다 돌린 우리 구역의 우체부가
저녁의 중앙공원을 한바퀴 돌고 집으로 돌아간 다음
나는 이른 아침에 잠에서 깨어 애인들 보고 싶다는노래를
부르고 또 부르며 중앙공원을 돌고 있어
이렇게 하루 종일 작은 동그라미를 그리면서 공원을 돌 듯
이렇게 돌다가 이 세상 밖으로 나가는 거야
세상의 모든 미친 사람들이 잠 못 들고
자신들의 악기에 달빛 칠하는 밤
동그란 궁륭 속에는 모두 제 이름 부르는 소리들 만발이야
내 귀가 세상의 모든 조개들만큼 많고 많아지는 밤
누군가 이 밤의 공기 커튼 밖에서
내내 팔딱거리며 나를 부르고 있는 것 같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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