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녁 한때 - 임 길 택

2010. 2. 11. 17:32마음의 쉼터/차 한 잔과 시

저녁 한때

 

   임 길택

 

뒤뜰 어둠 속에

나뭇짐을 부려 놓고

아버지가 돌아오셨을 때

어머니는 무 한 쪽을 예쁘게 깎아 내셨다.

 

말할 힘조차 없는지

무쪽을 받아든 채

아궁이 앞에 털썩 주저앉으시는데

환히 드러난 아버지 이마에

흘러난 진땀 마르지 않고 있었다.

 

어두워진 산길에서

후들거리는 발끝걸음으로

어둠길 가늠하셨겠지.

 

불 타는 소리

물 끊는 소리

다시 이어지는 어머니의 도마질 소리

그 모든 소리들 한데 어울려

아버지는 감싸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