짝사랑 - 이 윤학

2010. 1. 30. 11:19마음의 쉼터/차 한 잔과 시

짝사랑

 

   이 윤학

 

둥근 소나무 도마 위에 꽂혀 있는 칼

두툼한 도마에게도 입이 있었다.

악을 쓰며 조용히 입을 다물고 있는 입

빈틈없는 입의 힘이 칼을 물고 있었다.

 

생선의 배를 가르고

창자를 꺼내고 오는 칼.

목을 치고 몸을 토막 내고

꼬리를 치고.

지느러미를 다듬고 오는 칼.

 

그 순간마다 소나무 몸통은

날이 상하지 않도록

칼을 받아주는 것이었다.

 

토막난 생선들에게

접시나 쟁반 역할을 하는 도마.

둥글게 파여 품이 되는 도마.

칼에게 모든 걸 맞추려는 도마.

나이테를 잘게 끊어버리는 도마.

 

일을 마친 생선가게 여자는

세제를 풀어 도마 위를

문질러 닦고 있었다.

 

칼은 엎어놓은 도마 위에

툭 튀어나온 배를 내놓고

차갑고 뻣뻣하게 누워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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