짝사랑 - 이 윤학
2010. 1. 30. 11:19ㆍ마음의 쉼터/차 한 잔과 시
짝사랑
이 윤학
둥근 소나무 도마 위에 꽂혀 있는 칼
두툼한 도마에게도 입이 있었다.
악을 쓰며 조용히 입을 다물고 있는 입
빈틈없는 입의 힘이 칼을 물고 있었다.
생선의 배를 가르고
창자를 꺼내고 오는 칼.
목을 치고 몸을 토막 내고
꼬리를 치고.
지느러미를 다듬고 오는 칼.
그 순간마다 소나무 몸통은
날이 상하지 않도록
칼을 받아주는 것이었다.
토막난 생선들에게
접시나 쟁반 역할을 하는 도마.
둥글게 파여 품이 되는 도마.
칼에게 모든 걸 맞추려는 도마.
나이테를 잘게 끊어버리는 도마.
일을 마친 생선가게 여자는
세제를 풀어 도마 위를
문질러 닦고 있었다.
칼은 엎어놓은 도마 위에
툭 튀어나온 배를 내놓고
차갑고 뻣뻣하게 누워 있었다.
'마음의 쉼터 > 차 한 잔과 시' 카테고리의 다른 글
자화상 - 윤 동주 (0) | 2010.02.04 |
---|---|
어느 눈 오는 날 - 진 은영 (0) | 2010.02.01 |
나무 속엔 물관이 있다 - 고 재종 (0) | 2010.01.27 |
조국 - 이 시영 (0) | 2010.01.26 |
통도사 땡감 하나 - 최 영철 (0) | 2010.01.22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