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의 쉼터/차 한 잔과 시

자화상 - 윤 동주

길따라야 2010. 2. 4. 10:07

자화상

 

   윤 동주

 

  산모퉁이를 돌아 논가 외딴 우물을 홀로 찾아가선 가만히 들여다

봅니다.

 

  우물 속에는 달이 밝고 구름이 흐르고 하늘이 펼치고 파아란 바람

이 불고 가을이 있습니다.

 

  그리고 한 사나이가 있습니다.

  어쩐지 그 사나이가 미워져 돌아갑니다.

 

  돌아가다 생각하니 그 사나이가 가엾어집니다. 도로 가 들여다보

니 사나이는 그대로 있습니다.

 

  다시 그 사나이가 미워져 돌아갑니다.

  돌아가다 생각하니 그 사나이가 그리워집니다.

 

  우물 속에는 달이 밝고 구름이 흐르고 하늘이 펼치고 파아란 바람

이 불고 가을이 있고 추억처럼 사나이가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