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의 쉼터/차 한 잔과 시

늦가을 공원이 소란하다 - 마 경덕

길따라야 2009. 9. 18. 23:49

늦가을 공원이 소란하다

 

              마 경덕

 

가을나무들 일년 동안의 소득을 계산한다.

 

  분수대 옆 은행나무 봉지에 주워 담은 은행알을 세고

빨간 장갑으로 한 밑천 챙긴 단풍나무는 비가 잦아

재고가 많다고 엄살이다.

  바늘쌈지를 차고 앉은 그늘 귀퉁이 소나무 채머리를

흔드는데 아무 데나 바늘 좀 흘리지 말아욧! 눈을 흘기는

쥐똥나무 송이송이 쥐똥열매를 헤아린다.

  어디론가 전송하는 플라타너스는 새 발자국 탁본으로

소득공제가 늘었다.

  까치부부는 토지세가 올랐다고 깍깍깍  미루나무에게

항의 중인데 벤치에는 무표정한 얼굴 셋, 말없는 지팡이 둘,

그 사이 흘린 비둘기 울음 한 보따리.

  바람이 공원을 한 바퀴 도는 동안 가을나무들 수런수런수런,

열말정산을 서두른다.

  해거름에 공원을 찾아든 떠돌이 사내만

신문지를 덮고 벤치에 눕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