머피선생수다/머피 선생의 식설객설
가을산(임동확)
길따라야
2008. 8. 21. 10:37
가을산
다시 그리운 수림 사이로 아쉬운 듯
추억처럼 몇 개의 열매를 남겨놓은
그 가을산을 오르면
제 그림자 하나 맘껏 뻗지 못하는
검게 그을린 산등성이
키 작은 관목숲의 호위를 받으며
몸이 커 버림받은 불새가 앉아 있다
마치 져버린 붉고 노오란 낙엽처럼
그렇게 �쓸려가는 시간 속에서
날지 못하는 기다림의 깃털을 부풀리며
억센 뿌리의 갈대꽃만 온통 절정인
그곳에 저만의 크기로
아주 오래 숨죽여 울고 있다
그렇다 한 번 날기 위해
아니 두 번 죽지 않기 위해 천년을
저렇듯 자세조차 틀지 않은 채
돌처럼 견딜 수도 있겠구나
그러다가 절박하면 제 안 깊숙이
파고들어 거기 그대로
순명順明해갈 수도 있겠구나
시:임동확
시집:운주사 가는 길 (가을만 되면 생각나는 시입니다. 봄이면 이상화님의 빼앗긴 들에도 봄은 오는가하고, 김용택 시인의 생의 솔숲에서가 생각나는데, 며칠 전부터 쌀쌀한 아침이 가을인데 오늘 아침엔 유난히 가을 냄새가 짙네요. 말없는 산을 저렇게 형상화한 임동확 시인 참으로 대단합니다.)